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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손, 구유진의 분장이야기

마법의 손 2006. 10. 5. 21:52

 

마법의손, 구유진의 분장이야기

공연과 행사가 쏟아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흔히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멋있게 연출하는 배우는 기억하지만 무대 밖에서 막이 오르기까지 구슬땀 흘리는 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오페라, 연극 또는 창극 등 무대를 통한공연 예술 분야에서 등장인물의 설정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거기에 분장예술을 통한 등장인물의 설정은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연기와 동작으로 표현되고 또한 의상과 분장으로 인물의 성격을 극대화되기도 한다.
여기 25년동안 무대분장을 해온 분장 디자이너가 있다. 얼굴에 성격을 칠하는 ‘마법의 손’ 분장디자이너 구유진씨. 구유진씨는 우리나라 분장역사의 ‘산 증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오랫동안 무대 곁을 지키고 있다. 그의 분장예술 세계로 흠뻑 빠져보자.

“분장디자이너로 불리길 원합니다”

“저는 분장디자이너로 불리길 원합니다. 예전에는 분장사와 분장이 기술적의미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분장이란 혼자서 결코 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명칭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장은 배우의 성격을 창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조명, 의상, 무대와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진가를 더 발휘한다. 그러나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 분장은 그 자체가 아무리 예술적으로 표현되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한다. 아주 순진하고 얌전하고, 곱게 생긴 처녀의 얼굴이 분장 디자이너 손끝에서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악녀로 변할 때 우리는 분장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분장디자이너 구유진. 그이 이력을 보면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오른다. 그는 7살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무용을 했다. 무대위에서 조명을 받던 그가 왜 분장 디자인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저는 한국무용을 전공했는데 통일성이 강조되는 한국무용은 발레와는 달리 키와 외모를 따지는 분야였어요. 저는 한국무용을 하기에는 솔직히 작은편에 속했죠.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구유진씨는 대학시정 성격을 바꾸기 위해 가입했던 곳이 연극반 동아리였다. 당시 그는 무용과 교수들이 전공 외 다른 써클 활동을 인정하지 않아 배우로 서기보다는 줄곧 ‘스텝’으로 활동했었던 것이 계기. 그의 부친이 모 화장품 회사의 창단 맴버이기도 해 평소 화장품과 무용에 익숙했던 그는 연극반 분장이 적성에 떨어졌던 것.
물론 집안의 반대도 극심했다. ‘분장사’의 삶을 비교적 잘 알고 있던 그의 형부는 “조몀을 받던 애가 왜 무대 뒤에 가려고 하느냐”며 도리어 그를 설득했다고 했다. 가족의 반대도 일리가 있었던 것이 당시 분장분야는 미개척 분야였던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 분장사는 전국 50여명 안팎이었던 것.

딱 한권 밖에 없는 분장관련 책 읽고 또 읽어

“저는 오히려 미개척 분야면 더 잘됐다. 내가 분장 쪽으로 인생을 걸어 역사의 큰 획을 긋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했었지요.”

집안의 설득 끝에 그가 처음 한 것이 분장에 대한 공부였다. ‘그때 분장에 대한 책이 ’문학 예술 진흥원‘에서 출간된 딱 한권 밖에 없었어요. 10번을 읽고 읽어 독학하며 남동생을 앉혀놓고 실습을 했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분장의 매력에 매료 되었습니다.
독학 후 그가 찾은 곳은 바로 우리나라 ‘분장께의 대부’ 전예출씨였다. 그는 15년간 전예출씨의 최고 수석제자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광고, 메이크업, 웨딩, 방송 등 분장이 필요한 전 분야에 걸쳐 배워야 했다.
분장디자이너의 가장 큰 기쁨은 배우의 연기가 분장으로 더욱 밫날 때이다. 배우들이 분장을 통해 자신이 맡은 배역으로 흠뻑 빠져 들어 무대에 올랐을 때 그도 보람과 감동을 느낀다.
그가 무대 분장을 전문적으로 하기 시작한 때는 95년이었다. “배우던 시절에는 다 알아야 한다고 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막상 돌아보니 내가 제일 자신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 후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분야인 ‘무대’를 선택했다. 무대는 어렸을 때부터 구유진씨에겐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일명 ‘stage make-up' 이라고 불리는 무대분장은 무대위에서 공연이 되어지는 모든 분장을 말한다. 뮤지컬, 무용, 발레, 오페라 등을 망라한다.    

‘분장’을 예술로 끌어올리다
  그는 15년동안 현장을 누비며 극단적으로 ‘분장’을 ‘화장’으로 인식하던 시절 분장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한다. 바로 지난 96년 4월 <구유진의 분장이야기>(천의 얼굴로의 여행)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분장이 주인공이 되는 공연을 하고 싶었습니다. 분장 외에는 모든 것이 보조가 되는 공연을 나만의 색깔을 표현하고자 했지요. 그 공연은 나의 색깔을 장르별로 구분하고 오페라, 뮤지컬, 발레, 현대무용, 연극 등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분장을 해서 공연을 했어요.”

당시에는 분장을 가지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던 시절이었지만 사회적인 반향은 대단했다. 공연을 전후로 분장예술 분야가 새롭게 주목받는데 단초가 되었다.
당시 스승이었던 전예출씨는 “분장 예술인이라면 한번쯤은 꿈꾸어 봄직한 공연을 제자인 구유진의 노력을 통해 보게 되어 감호가 깊다”.고 전하기도 했다. 극작가 처범석씨는 “인간창조(연기) 못지않게 분장 분야가 떠맡게 될 예술성의 발견에 그 목적을 둔 이번 시도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무대예술의 재창조를 확인하는 야심”이라고 감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유진씨는 무대분장을 10년째 전문적으로 하고 있지만 무대 분장 예술의 세계는 힘겨운 곳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즘 대중매체가 각광받으면서 ‘진짜 예술가’는 무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 예술분야는 소외되어 있다는 것.
“무대쪽의 가장 큰 문제가 분장, 조명, 미술 등 숙련된 사람들도 오래 못버티고 떠나고 있다”며 “무대분야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것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분장예술 분야가 앞으로 더욱 전문화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럴려면 훌륭한 체계에  서 탄탄하게 교육받은 인재가 키워지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유진씨는 내년이면 분장디자이너 25년, 무대분장 10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내년 소망은 10주년 기념으로 분장공연을 한 번 더 가지는 것이란다. ‘평생 분장 디자이너로 살겠다’는 그의 다짐 속에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글-김명희기자  사진-양주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