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전통 복식은 청아하고 단아하다는 단어로 대변되지만, 조선시대 기녀들의 복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화미하고 농염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그녀들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트레머리는 여러 개의 달비를 실타래처럼 틀어 올린 형태로써, 조선시대 미인도 및 풍속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우리의 전통머리이다.
트레머리 실타래처럼 틀어 올려 머리에 단단히 고정시킨 트레머리는 조선시대 기녀들의 전유물이었다. 18세기 조선 민중들의 삶을 화폭에 담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녀들의 머리가 바로 이 모양인 것. 유운홍의 <기방>을 보면 미리 준비한 큰 달비를 머리에 고정시키고 휘감아 올리려는 듯한 모습의 기녀를 볼 수 있다. 그것을 사방으로 두르듯이 얹어 놓고 단단히 고정시키면 조선시대 기녀들의 상징인 트레머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특히 기녀와 한량의 여유작작한 삶을 모티프로 많은 풍속화를 남겼던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 트레머리가 얼마나 농염한 매력을 풍기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근검절약 정신을 강조한 정조대왕의 명령에 따라 전국적으로 가체 금치령이 내려졌지만 기생들의 트레머리는 더욱 더 화려해지고 풍성해졌다. 그 이유는 트레머리가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스타일이었기에 고수하려는 그들의 의지와 제재를 가하는 쪽에서도 이에 대해 관대함과 묵인을 보였기 때문이다. 18세기 풍속화 속에서 농염한 자태로만 남아있던 기녀들의 모습은 현재 다양한 사극 드라마와 기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기녀복 (妓女服) 조선 후기의 풍속화들을 보면 기녀복은 서민층 의복과 기본구조는 같았으나 의상의 화려한 색이나 착장 방법, 장신구 따위에서 사치스런 기질이 나타난다. 관기들 중에서 동기(童妓)는 새앙머리를 하고 홍치마와 녹색 저고리를 입었으며 어른 기녀는 트레머리 위에 흑색 가리마로 장식하고 연두색이나 분홍색등 선명한 색의 저고리에 남갑사 홑치마를 입었다. 노리개는 장도노리개를 차고, 치마는 오른쪽 자락을 왼편으로 둘렀으며 양반 부녀와 구별하기 위해 노랑저고리·삼회장저고리·겹치마의 착용은 금했으나 반회장저고리는 입을 수 있었다. 머리에는 전모(氈帽)를 썼는데 이는 기녀들뿐만 아니라 일반 부녀자들도 외출할 때 착용한 것으로, 형태는 방립(方笠)과 비슷하다. 테두리에 14~16개의 대나무 살을 대어서 한지를 바른 다음에, 나비·꽃나무·수(壽)·복(福)·부(富)·귀(貴) 등의 문양을 그려 넣고 들기름에 절여 만들어 여성다움을 강조했다. 색에 대한 규제가 심하기는 했으나 장삼 및 여염집 여자들이 애용하는 노리개와 가죽신이 허용되었고, 약방기생에게는 예복으로 녹의홍상(綠衣紅裳)에 큰머리를 하고 고름에 침통을 찰 수 있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기도 했다. 즉 사라능단(紗罹綾緞)을 재료로 한 모든 복식품의 착용이 허용되고, 금·은으로 장신구를 사용할 수 있어 당시 기녀복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
'헤어스타일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뷰티 라이프 3월 고전머리 어유미 (0) | 2009.09.01 |
|---|---|
| [스크랩] 황진이 하지원 vs 추측 되고 있는 진짜 황진이 모습 (0) | 2009.09.01 |
| [스크랩] 4인의 헤어스타일리스트들이 도전한 전통과 퓨전의 새로운 만남 (0) | 2009.09.01 |
| 고구려의상및 헤어자료 (0) | 2007.09.06 |
| 고구려의상 및 헤어자료 (0) | 2007.09.06 |